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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후 시기 질투 앞에서, 이삭은 보복하지 않았다

본문: 창세기 26:14–16

잘될 때 시기 질투가 찾아옵니다

승진 소식을 전한 다음 날, 늘 웃으며 인사하던 동료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습니다. 가게에 손님이 늘자 근처 상인들 사이에서 말이 돌기 시작합니다. 이 글은 일이 잘될 때 따라오는 시기 질투와 관계의 시험을 창세기 26장의 이삭과 함께 생각해 보려는 글입니다.

흉년을 지나며 우리는 “이 시기만 넘기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복이 커진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시험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거부가 된 이삭, 그리고 블레셋의 시기

지난 글에서 이삭은 백배를 거두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구절이 이렇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 26:14)

농사를 시작했지만 이삭은 양과 소를 놓지 않았습니다. 밭과 가축이 함께 불어났고, 그 모습은 이웃의 눈에 그대로 보였습니다. 시기는 이삭이 잘못해서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되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시기는 곧 행동이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아브라함 때 판 우물들을 흙으로 메웠습니다(15절). 목축하는 사람에게 우물은 생명줄입니다. 그것을 막는 일은 “너는 여기서 살지 마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결국 입으로 말합니다.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창 26:16)

복의 크기가 곧 떠나라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머물라고 하신 땅에서, 사람들은 떠나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왜 보복하지 않았을까요

이 장면에서 이삭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17절은 그가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쳤다고만 기록합니다. 종이 심히 많았다는 사람이라면 맞설 힘도 있었을 텐데, 성경에는 보복의 장면이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약함이 아니라 붙든 것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삭의 복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온 것이었습니다. 블레셋이 우물을 메운다고 그 복의 근원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근원을 아는 사람은 우물 하나를 두고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이삭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장 앞부분에서 그는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6–11절). 그런 사람이 이번에는 두려움이 아닌 믿음으로 물러섭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을 이렇게 조금씩 빚어 가십니다.

오늘의 적용: 성공 후의 겸손

잘될 때 겸손하게 사는 법은 형통할 때의 태도에 관한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비추어 몇 가지를 덧붙입니다.

  • 내 성과를 필요 이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크게, 자랑은 사람 앞에서 작게 하는 편이 좋습니다.
  • 나를 시기하는 사람을 적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 뒤에는 그 사람만의 흉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억울한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되갚기보다 하루를 기다려 봅니다. 그 하루 동안 기도로 먼저 말해 봅니다.

한 가지 더 정직하게 볼 것이 있습니다. 시기는 남의 마음에만 있지 않습니다. 내가 앞서갈 때는 시기를 받는 쪽이지만, 누군가 나보다 앞서가면 나도 쉽게 블레셋 사람이 됩니다. 이삭의 이야기는 시기를 견디는 법과 함께, 내 안의 시기를 돌아보게 합니다.

시기를 완전히 피할 길은 없습니다. 복이 보이면 시기도 보입니다. 다만 그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삭이 그다음에 한 일, 메워진 우물을 다시 판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묵상 질문

  1. 최근 누군가의 시기나 견제를 느꼈을 때, 내 마음에 가장 먼저 올라온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2. 나는 다른 사람의 잘됨을 보며 블레셋 사람처럼 우물을 메우고 싶었던 적은 없습니까?

기도

주님, 잘될 때 더 낮아지게 하소서. 시기하는 사람 앞에서 되갚지 않고, 복의 근원이신 주님을 붙들게 하소서. 제 안의 시기도 비추어 주시고 씻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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