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26:15, 18
막힌 우물 앞에 선 이삭
삽 끝에 마른 흙이 걸립니다. 한때 물이 넘치던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그곳을 다시 팝니다. 이 글은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이 메워진 우물을 다시 판 장면을 통해, 막혀 버린 신앙을 되살리고 신앙 유산을 회복하는 길을 생각해 보는 글입니다.
지난 글에서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시기해 우물을 메웠습니다. 본문은 그 우물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분명히 적습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블레셋 사람이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창 26:15)
메워진 것은 이삭의 우물이기 전에 아브라함의 우물이었습니다. 한 세대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판 물길이, 다음 세대 앞에서 흙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새 우물보다 먼저 옛 우물을 팠습니다
18절에서 이삭이 한 일은 의외입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거부가 된 이삭에게는 새 땅을 찾아 새 우물을 팔 힘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뒤에서 새 우물도 팝니다(19절 이하). 하지만 그 전에 그는 아버지가 팠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새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옛것을 지나간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새 밭을 일구면서도 아버지의 우물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낯선 농사와 오래된 우물이 그의 삶에 함께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읽는 분들 가운데는 이직이나 창업처럼 새 밭 앞에 선 분이 많을 것입니다. 새 일에 마음을 쏟다 보면 오래 붙들던 신앙의 습관이 가장 먼저 밀려납니다. 이삭의 순서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새 우물을 파기 전에, 먼저 다시 파야 할 옛 우물은 없느냐고.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부른 이유
18절 끝에는 작은 문장 하나가 더 붙어 있습니다.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새로 지을 수도 있었습니다. 내가 다시 팠으니 내 우물이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옛 이름을 그대로 불렀습니다. 저는 이것을 계승의 고백으로 읽습니다. 이 물은 내가 처음 찾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하나님이 먼저 주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신앙 유산이란 이런 것입니다. 앞선 세대가 기도하던 자리, 말씀을 붙들던 방식, 하나님을 부르던 이름을 이어받는 일입니다.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지에 대해서는 신앙 유산을 물려주는 일에 관한 글에서 더 나누었습니다.
막힌 기도, 말씀, 예배의 우물을 다시 파려면
우리 삶에도 메워진 우물이 있습니다. 바쁨, 실망, 상처, 혹은 그저 오래된 게으름이 흙처럼 쌓여 물길을 막습니다.
- 기도의 우물: 예전에 기도하던 시간과 장소를 떠올려 봅니다. 새벽이든 출근길이든, 그 자리로 한 번만 돌아가 봅니다.
- 말씀의 우물: 처음 은혜받았던 본문을 다시 펴 봅니다. 새 책보다 오래 밑줄 그은 성경이 물길을 더 빨리 엽니다.
- 예배의 우물: 가정에서 함께 드리던 짧은 예배가 끊겼다면, 한 주에 한 번 10분으로 다시 시작해 봅니다.
우물을 다시 파는 일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흙을 퍼내는 일은 지루하고, 처음에는 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자리에는 한때 물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그 사실을 믿고 삽을 들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새로 판 우물을 두고 벌어진 다툼, 에섹과 싯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묵상 질문
- 지금 내 삶에서 흙으로 덮인 우물은 기도, 말씀, 예배 중 어느 것입니까?
- 내가 앞선 세대에게서 받은 신앙의 이름 가운데 계속 불러야 할 이름은 무엇입니까?
기도
주님, 막힌 우물을 다시 파게 하소서. 앞선 이들이 부르던 주님의 이름을 저도 부르게 하시고, 제가 판 우물이 다음 세대의 물길이 되게 하소서. 아멘.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