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26:22
르호봇, 세 번째 우물의 이름
르호봇은 “넓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 글은 다툼과 좁아짐이 반복되는 시간을 지나는 분들께, 하나님이 넓게 하시는 때를 어떻게 기다릴 수 있는지 창세기 26장 22절로 나누려 합니다.
이삭의 종들은 이미 우물 두 개를 빼앗겼습니다. 에섹에서는 그랄 목자들이 물이 자기들 것이라며 다투었고, 싯나에서는 더 깊은 대적이 있었습니다. 에섹과 싯나를 다룬 지난 글에서 그 장면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또 짐을 꾸립니다. 땀 흘려 판 우물을 뒤로하고, 다시 마른 땅을 찾아 삽을 듭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창 26:22)
넓음은 인내 끝에 주어졌습니다
본문은 르호봇을 첫 번째 우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입니다. 두 번 빼앗기고, 두 번 물러난 뒤에야 다툼이 없는 자리가 나옵니다.
우리는 대개 첫 번째 우물에서 넓은 곳을 기대합니다. 처음 시작한 일, 처음 들어간 회사, 처음 낸 가게가 바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삭의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넓음은 한 번에 오지 않았고, 이삭은 다투는 대신 다시 팠습니다.
이것을 체념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이삭은 포기한 것이 아니라 계속 판 사람입니다. 물러나는 일과 멈추는 일은 다릅니다.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실패 후 다시 시작하는 일에 관한 글에서도 나눈 적이 있습니다.
넓은 곳은 하나님이 여시는 공간입니다
이삭의 고백을 다시 읽어 보면 문장의 주어가 분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삭은 “우리가 드디어 좋은 자리를 찾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땅에서 같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우물을 팠습니다. 달라진 것은 이삭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를 다툼 없는 곳으로 여셨습니다.
그래서 르호봇은 우리가 쟁취하는 땅이 아니라 받는 땅입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넓은 곳을 내 힘으로 얻었다고 믿으면, 그곳을 지키느라 또 다른 다툼을 시작하게 됩니다.
번성의 고백에서 주인은 여호와이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이 말은 성공 선언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 문장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번성은 여호와께서 넓게 하신 결과로 고백됩니다.
이 시리즈가 계속 붙드는 순서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여시고, 그다음 열매가 따릅니다. 열매가 목적이 아니라 순종의 결과입니다. 번성이 약속된 공식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이삭은 그 넓음을 자기 공로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넓은 곳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 빼앗긴 우물을 세어 보되, 거기에 머물지 마십시오. 무엇을 잃었는지 정직하게 적어 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목록이 다음 삽질을 막지 않게 하십시오.
- 다투지 않고 옮겨도 됩니다. 모든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를 지키며 물러나는 선택이 비겁함이 아닐 수 있습니다.
- 넓어진 뒤의 고백을 미리 준비하십시오. 일이 풀렸을 때 “여호와께서 하셨다”고 말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감사의 말을 연습해 두면 좋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르호봇 이후 브엘세바로 올라간 이삭에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시는 장면, 그리고 쫓아냈던 사람들이 먼저 찾아오는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묵상 질문
- 지금 나는 몇 번째 우물을 파고 있다고 느낍니까? 그 앞의 우물들은 내게 무엇을 남겼습니까?
- 내 삶에 넓은 곳이 주어졌을 때, 그 고백의 주어는 누구입니까?
기도
주님, 빼앗긴 우물 앞에서 다투기보다 다시 파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넓은 곳을 여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잊지 않게 하시고, 열린 자리에서도 주의 이름을 먼저 부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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