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26:23–31, 잠언 16:7
나를 밀어낸 사람이 찾아올 때
원수와 화해하는 일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글은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과 다시 마주해야 하는 분들께, 이삭이 브엘세바에서 겪은 일을 통해 화평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나누려 합니다.
어느 날 전화가 옵니다. 예전에 나를 내보냈던 회사의 상사, 동업을 깨고 떠났던 사람, 오래 연락을 끊었던 가족입니다. 반가움보다 먼저 경계심이 올라옵니다. “이제 와서 왜?”
이삭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신하들과 함께 찾아왔을 때, 이삭은 그들이 자신을 미워하여 떠나가게 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27절). 그 질문에는 지난 상처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
이야기의 순서를 보면, 아비멜렉이 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르호봇에서 넓은 곳을 얻은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르호봇 이야기는 지난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창 26:24)
하나님은 이삭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우물을 빼앗기고 옮겨 다닌 세월이 마음에 흔적을 남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황을 설명하시기 전에 먼저 “함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단, 장막, 우물의 순서
25절은 이삭의 반응을 세 가지 동작으로 기록합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거기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습니다.
예배가 먼저였고, 그 자리에 머물기로 했고, 그다음 일을 했습니다. 이 순서는 우연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가라앉은 자리, 하나님 앞에 먼저 선 자리에서 이삭은 사람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원수와 화해, 누가 먼저 움직였나
본문에서 화평을 먼저 청한 쪽은 이삭이 아니라 아비멜렉입니다. 그들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창 26:28)
아비멜렉은 이삭의 재산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왔다고 말합니다. 다투지 않고 물러나던 이삭의 모습이 그들 눈에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잠언 16장 7절이 이 장면과 겹칩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화목하게 하시는 분이 여호와이십니다. 이것은 내가 잘하면 모든 관계가 반드시 회복된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다만 화평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삭의 화해 잔치
이삭은 따지고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고,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30절). 이튿날 아침 서로 맹세하고 그들을 평안히 보냈습니다(31절).
상처를 말하는 것과 화해를 거절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삭은 지난 일을 정직하게 꺼냈지만, 식탁을 거두지는 않았습니다. 일터에서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문제는 일터와 사업에서의 신뢰를 다룬 글에서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적용
먼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내려놓으십시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하나님께 먼저 말씀드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처를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이삭처럼 “왜 왔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정직한 대화가 화해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식탁 하나를 준비해 보십시오. 거창한 화해가 아니어도 됩니다. 차 한 잔, 짧은 안부 문자 하나가 잔치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다만 안전이 위협받는 관계라면 무리하게 만나지 말고 믿을 만한 사람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묵상 질문
- 지금 내가 “이제 와서 왜?”라고 묻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 그 사람이 내 삶에서 “여호와께서 함께 계심”을 볼 수 있으려면, 나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기도
주님, 두려움 속에 있는 저에게 먼저 찾아와 함께 있다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상처를 정직하게 말하되, 화평의 식탁을 거두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원수라도 화목하게 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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